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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앙 역사와 현재를 수놓은 슈퍼스타 완전 분석

Homepage / 리그앙 <레전드 기록>

리그앙이란 무엇인가: 기본 정보와 현재 위상

유럽 5대 리그의 서열과 리그앙의 위치

리그앙(Ligue 1)은 1932년 창설된 프랑스 최상위 프로축구 리그입니다. UEFA가 산정하는 리그 랭킹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며 프리미어리그, 라리가, 분데스리가, 세리에A와 함께 유럽 5대 리그로 분류됩니다.

유럽 5대 리그 UEFA 랭킹 (2025년 10월 기준)

1

프리미어리그

잉글랜드

계수: 92.446
2

라리가

스페인

계수: 87.093
3

세리에A

이탈리아

계수: 77.250
4

분데스리가

독일

계수: 74.928
5

리그앙

프랑스

계수: 56.916
🏆

리그앙의 글로벌 위상

2025년 10월 기준 유럽 5위의 위상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최근 10여 년간 파리 생제르맹을 필두로 한 막강한 재정력, 세계적인 선수 영입, 그리고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준수한 성적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창설 연도

1932년 창설된 프랑스 최상위 프로축구 리그

참가 클럽

18개 클럽이 참가하는 단일 리그 시스템

글로벌 중계

전 세계 170개국 이상에서 중계되는 글로벌 리그

리그앙(Ligue 1)은 1932년 창설된 프랑스 최상위 프로축구 리그로, 정식 명칭은 ‘리그 1 맥도날드(Ligue 1 McDonald’s)’다. 18개 클럽이 참가하는 이 리그는 유럽축구연맹(UEFA)이 산정하는 리그 랭킹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며 프리미어리그, 라리가, 분데스리가, 세리에A와 함께 ‘유럽 5대 리그’로 분류된다. UEFA의 국가별 계수에 따르면, 리그앙은 2025년 10월 기준 유럽 5위의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지위는 단순히 전통만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최근 10여 년간 파리 생제르맹을 필두로 한 막강한 재정력, 세계적인 선수 영입, 그리고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준수한 성적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리그앙은 프랑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170개국 이상에 중계되며, 글로벌 축구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유럽 5대 리그로서 리그앙의 현재 경쟁력

리그앙의 현재 구조는 극명한 이중성을 띤다. 파리 생제르맹(PSG)은 카타르 자본을 기반으로 2010년대 이후 13차례 우승을 기록하며 사실상 독주 체제를 구축했다. 네이마르, 메시, 음바페로 대표되는 막강한 전력은 타 구단과 비교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아래 순위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AS모나코, OGC 니스, 릴 OSC, 올랭피크 리옹, 마르세유 등은 챔피언스리그 및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두고 매 시즌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다. 특히 릴은 2020-21시즌 PSG를 제치고 우승하며 리그의 경쟁력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재정 격차는 분명하지만, 중위권 팀들의 전술적 완성도와 젊은 유망주 발굴 능력은 리그앙이 여전히 유럽 무대에서 존중받는 이유다.

25-26 시즌 주목해야 할 주요 팀과 판도

킬리안 음바페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은 리그앙 판도에 예상치 못한 균열을 만들었다. PSG는 2024-25시즌 13번째 리그 타이틀을 거머쥐며 여전히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했지만, 절대적 에이스의 부재는 경기 운영 방식 자체를 재편하도록 강제했다. 브래들리 바르콜라와 곤살루 하무스 등 신예 공격수들이 그 공백을 메우고 있으나, 과거와 같은 개인기 중심의 파괴력은 다소 희석됐다. 올랭피크 마르세유는 로베르토 데 제르비 감독 부임 후 공격축구를 전면에 내세우며 2024-25시즌 준우승을 차지했고, 2025-26시즌에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다. 올랭피크 리옹 역시 젊은 선수단의 활력으로 상위권 복귀를 노린다. 특히 AS모나코는 팀 조직력과 안정적인 수비를 기반으로 챔피언스리그 직행 티켓을 확보할 다크호스로 주목받는다. 

새로운 황제, 킬리안 음바페의 리그 지배

압도적인 기록으로 증명된 리그앙 지배자

2016년 AS 모나코의 10대 소년으로 등장한 킬리안 음바페는 폭발적인 스피드와 정확한 마무리로 주목받았고, PSG 이적 후 진정한 황제로 군림했습니다. 통산 191골과 76어시스트라는 압도적인 기록이 그의 지배력을 증명합니다.

⚽

킬리안 음바페

리그앙 통산 기록 (2016-2024)

⚽

191

리그앙 통산 골

🎯

76

리그앙 통산 어시스트

👑

6

득점왕 타이틀

🏆 리그앙 주요 업적

🥇 2018-19시즌부터 2023-24시즌까지 6차례 연속 득점왕
⚡ 리그앙 역대 최연소 100골 돌파 (21세 355일)
🎯 PSG 소속 리그앙 역대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

시즌별 득점왕 기록

2018-19

33골 - 첫 득점왕 타이틀 획득

2019-20

18골 - 단축 시즌 득점왕

2020-21

27골 - 3연속 득점왕

2021-22

28골 - 4연속 득점왕

2022-23

29골 - 5연속 득점왕

2023-24

27골 - 6연속 득점왕 (PSG 마지막 시즌)

💫

리그앙에 미친 영향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리그앙의 수비 전술 자체를 재편했습니다. 상대 팀들은 음바페를 막기 위해 더 깊게 내려앉고, 더 빠른 수비수를 배치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리그 전체의 전술적 수준이 한 단계 격상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2016년, AS 모나코의 10대 소년이 리그앙 무대에 등장했을 때 그 누구도 그가 프랑스 축구의 역사를 다시 쓸 줄 몰랐다. 킬리안 음바페는 데뷔 시즌부터 폭발적인 스피드와 정확한 마무리로 주목받았고, 2016-17시즌 모나코를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강으로 이끌며 유럽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듬해 PSG로 이적한 뒤, 그는 진정한 황제로 군림했다. 리그앙 역대 득점왕 기록을 살펴보면, 음바페는 2018-19시즌부터 2023-24시즌까지 6차례 득점왕을 차지하며 리그를 사실상 독점했다. 통산 191골과 76어시스트라는 압도적인 기록은 그가 단순한 스피드 스타가 아니라 완성형 공격수임을 증명한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리그앙의 수비 전술 자체를 재편했다. 상대 팀들은 음바페를 막기 위해 더 깊게 내려앉고, 더 빠른 수비수를 배치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리그 전체의 전술적 수준이 한 단계 격상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리그앙에 남긴 압도적인 득점 기록

역대 기록과의 비교로 보는 음바페의 득점력

킬리안 음바페는 리그앙 통산 191골을 기록하며 역대 득점 순위 7위에 올라 있습니다. 25세의 나이로 이 수치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그의 득점 효율은 가히 경이적입니다. 역대 1위 델리오 온니스와의 비교를 통해 음바페의 압도적인 효율성을 확인해보세요.

리그앙 역대 득점 기록 비교

1 델리오 온니스
299골
299
7 킬리안 음바페
191골
191
📅

활동 시즌

온니스

14시즌

음바페

7시즌

⚽

시즌당 평균

온니스

21.4골

음바페

27.3골

🎯

득점왕 횟수

온니스

5회

음바페

6회

💡

효율성의 차이

온니스는 14시즌에 걸쳐 299골을 기록했고, 음바페는 7시즌 만에 191골을 달성했습니다. 시즌당 평균 득점에서 음바페는 압도적 우위를 점하며, 현대 축구에서 가장 효율적인 공격수 중 한 명임을 입증했습니다. 그의 기록은 리그앙의 공격력 기준 자체를 재정의했으며, 향후 오랜 시간 동안 깨지기 어려운 벤치마크로 남을 전망입니다.

킬리안 음바페는 리그앙 통산 191골을 기록하며 역대 득점 순위 7위에 올라 있다. 25세의 나이로 이 수치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그의 득점 효율은 가히 경이적이다. 특히 2018-19시즌부터 2023-24시즌까지 6시즌 연속 득점왕을 차지한 기록은 리그앙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으로 평가받는다. 역대 1위는 델리오 온니스의 299골이지만, 음바페와의 결정적 차이는 출전 경기 수와 커리어 기간에 있다. 온니스는 14시즌에 걸쳐 이 기록을 세웠고, 음바페는 7시즌 만에 191골을 달성했다. 시즌당 평균 득점에서 음바페는 압도적 우위를 점하며, 현대 축구에서 가장 효율적인 공격수 중 한 명임을 입증했다. 그의 기록은 리그앙의 공격력 기준 자체를 재정의했으며, 향후 오랜 시간 동안 깨지기 어려운 벤치마크로 남을 전망이다.

PSG 시대가 남긴 유산 최종 평가

음바페의 PSG 시대는 리그앙에 명백한 유산을 남겼다. 그의 존재는 리그의 글로벌 인지도를 극적으로 상승시켰고, 중계권 수익과 스폰서십 가치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전 세계 팬들이 매주 리그앙 경기를 시청하는 이유 중 상당 부분이 음바페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채워지지 않은 공백도 존재한다. PSG는 음바페 재임 기간 동안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2019-20시즌 준우승이 가장 근접한 성과였지만, 빅이어를 들어올리지 못한 채 그가 떠났다는 사실은 PSG와 리그앙 모두에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의 이적 이후 리그앙은 스타 파워 면에서 일정 부분 공백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리그가 한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 경쟁 구도로 진화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PSG 시대를 장식한 세기의 아이콘 - 메시와 네이마르

2021년 여름, 리오넬 메시가 바르셀로나를 떠나 파리 생제르맹에 합류했을 때 축구계는 술렁였다. 이미 네이마르와 음바페가 자리 잡고 있던 PSG에 메시까지 합류하면서, ‘MNM 라인’이라 불리는 역대급 공격 트리오가 탄생했다. 당시 파리는 말 그대로 축구의 중심지였다. 세 명의 발롱도르 수상자(메시 7회, 네이마르 후보 다수)가 한 팀에서 뛴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적인 순간이었고, 전 세계 언론은 PSG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기정사실화했다. 실제로 MNM은 리그앙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화려한 패스 워크와 개인기는 매 경기 하이라이트를 장식했고, 팬들은 그들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챔피언스리그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21-22시즌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역전패를 당했고, 2022-23시즌에도 바이에른 뮌헨에 무너졌다. 결국 메시와 네이마르는 빅이어를 들어올리지 못한 채 PSG를 떠났다. 화려했지만 완성되지 못한 프로젝트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리오넬 메시, 파리에서 2년은?

리오넬 메시의 PSG 2년은 수치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바르셀로나 시절과 달리 득점력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전술적 역할 변화에서 기인한다. 그는 더 이상 최종 마무리를 책임지는 득점원이 아닌, 음바페와 네이마르를 살리는 플레이메이커로 재배치되었다. 실제로 메시의 어시스트 수치는 PSG 시절 크게 증가했고, 공간 창출과 패스 성공률은 여전히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팀 차원에서도 2021-22, 2022-23 두 시즌 연속 리그앙 우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무엇보다 상업적 성공은 부인할 수 없다. 메시의 영입 이후 PSG의 유니폼 판매량은 전년 대비 400% 이상 급증했고, 글로벌 스폰서십 계약이 잇따랐다. 경기장 수용 능력을 초과하는 관중 수요는 리그 전체의 흥행을 견인했다. 축구적 성과와 별개로, 메시는 PSG와 리그앙을 세계적 브랜드로 격상시킨 아이콘이었다.

네이마르가 리그앙에 가져온 기술과 논란

2017년 여름, 네이마르는 2억 2,200만 유로라는 역대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바르셀로나에서 PSG로 이적했다. 당시 축구계는 그 금액에 충격을 받았고, PSG는 네이마르를 통해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꿈에 한 발짝 다가섰다고 믿었다. 경기장에서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화려한 드리블, 정확한 킥, 그리고 창의적인 플레이메이킹으로 리그앙을 지배했고, 2017-18시즌 19경기 출전으로 28골 관여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하지만 네이마르의 PSG 시절은 항상 부상이라는 그림자를 동반했다. 중요한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앞두고 반복되는 결장은 팀에 치명타였고, 6년간 총 112경기를 부상으로 결장하며 출전율이 60%대에 그쳤다. 경기 외적으로도 파티 논란, 팀 내 불화설 등 구설수에 자주 올랐다. 결과적으로 네이마르는 뛰어난 재능과 아쉬운 프로페셔널리즘이 공존했던 선수로 기억된다.

리그를 압도한 카리스마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2012년, 카타르 스포츠 투자기금이 PSG를 인수하며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그 시대의 첫 번째 아이콘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였다. AC 밀란에서 이적한 그는 첫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파리는 이제 즐라탄의 도시다.” 오만하게 들렸지만, 그는 그 말을 현실로 만들었다. 4시즌 동안 156경기에 출전해 156골을 터뜨리며 경기당 1골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고, PSG를 4년 연속 리그앙 우승으로 이끌었다. 즐라탄은 단순한 스트라이커가 아니었다. 압도적인 피지컬과 함께 예술적인 골을 양산했고, 그의 존재 자체가 상대 수비진에게 공포였다. 특히 2013년 생테티엔전에서 터뜨린 30미터 거리의 자전거 킥 골은 리그앙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기록됐다. 즐라탄은 PSG를 지방 클럽에서 유럽 무대의 강호로 변모시킨 핵심 동력이었다. 즐라탄은 리그앙의 아이콘이자, PSG 황금기의 시작이었다.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 결정적인 존재였다.

즐라탄이 정의한 PSG의 첫 번째 황금기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PSG에서 보낸 2012년부터 2016년까지의 4시즌은 클럽 역사상 첫 번째 황금기로 기록된다. 그는 4년 연속 리그앙 우승(2012-13, 2013-14, 2014-15, 2015-16)을 이끌며 PSG를 프랑스 축구의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시켰다. 당시 PSG는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에딘손 카바니, 티아고 실바, 마르코 베라티 등 세계적인 선수들을 영입했지만, 그들을 하나로 묶어낸 것은 즐라탄의 리더십이었다. 그는 라커룸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고, 중요한 순간마다 결정적인 골로 팀을 구해냈다. 즐라탄이 주입한 위닝 멘탈리티는 PSG의 DNA로 자리 잡았다. 그 이전까지 리그앙에서 중위권에 머물던 PSG는 즐라탄 이후 ‘우승이 당연한 팀’으로 변모했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PSG 지배 체제의 초석이 되었다. 즐라탄은 단순히 골을 넣는 선수가 아니라, PSG라는 브랜드 자체를 재정의한 인물이었다.

'즐라탄 타임' 기억되는 명장면과 어록

즐라탄의 리그앙 시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쇼였다. 2013년 10월, 생테티엔과의 원정 경기에서 그는 축구 역사에 남을 골을 작성했다. 페널티 박스 밖 30미터 지점, 등을 지고 날아오는 공을 향해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자전거 킥. 공은 골키퍼의 손이 닿지 않는 상단 구석으로 정확히 꽂혔다. 경기장은 침묵으로 얼어붙었고, 즐라탄은 팔을 활짝 펴며 “이것이 나다”라는 듯 세레머니를 했다. 2014년 바스티아전에서는 거의 40미터 거리에서 태권도 킥을 연상시키는 회전 발리슛을 성공시키며 또 한 번 리그를 경악시켰다. 경기장을 벗어나서도 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PSG가 나를 원한 게 아니라, 내가 PSG를 선택했다.” “프랑스는 즐라탄의 나라다.” 오만해 보이는 이 어록들은 실제로는 자신감의 표현이었고, 리그앙의 흥행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즐라탄은 경기 그 자체를 하나의 퍼포먼스로 만들었다.

역사를 빛낸 불멸의 리그앙 레전드 선수들

리그앙의 역사는 PSG의 카타르 자본 인수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프랑스 축구는 두 개의 거대한 축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첫 번째 축은 올림피크 마르세유였다. 1990년대 초반, 장-피에르 파팽은 마르세유를 유럽 정상으로 이끌었다. 그는 1989년부터 1992년까지 4시즌 연속 리그앙 득점왕을 차지했고, 1991년에는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프랑스 축구의 위상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마르세유는 1992-93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프랑스 클럽 최초의 업적을 달성했고, 파팽은 그 중심에 있었다. 두 번째 축은 2000년대 올랭피크 리옹이었다. 주닝요는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리옹에서 뛰며 프리킥의 예술을 완성했다. 그는 통산 77개의 프리킥 골을 기록했고, 리옹의 7연패(2001-02부터 2007-08)를 이끌었다. 이 두 시대는 각각 리그앙이 유럽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음을 증명했다. 파팽의 마르세유와 주닝요의 리옹은 현재 리그앙의 역사적 자산이며, PSG 시대 이전에도 이 리그가 세계적 수준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장 피에르 파팽과 90년대 마르세유 신화

1990년대 초반, 올림피크 마르세유는 유럽 축구의 정점에 서 있었다.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리그앙 4연패를 달성했고, 1992-93시즌에는 프랑스 클럽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 신화의 중심에는 장 피에르 파팽이 있었다. 그는 1986년부터 1992년까지 마르세유에서 뛰며 182경기 134골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고, 리그앙 5회 연속 득점왕(1987-88부터 1991-92)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수립했다. 파팽의 골 결정력은 압도적이었다.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위치 선정, 양발 슛, 헤딩까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스트라이커였고, 1991년에는 프랑스 선수 최초로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인정받았다. 마르세유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현재까지도 리그앙 클럽이 달성한 유일한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파팽은 그 역사의 상징이자 리그앙이 유럽 최정상급 리그였던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주닝요 페르남부카누, 리옹 7연패의 마에스트로

2000년대 올랭피크 리옹은 리그앙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작성했다. 2001-02시즌부터 2007-08시즌까지 7연패. 이 압도적인 지배력의 중심에는 브라질 출신 미드필더 주닝요 페르남부카누가 있었다. 2001년 리옹에 합류한 그는 단순한 득점원이 아니라 경기를 조율하는 마에스트로였다. 중원에서 패스를 배급하고, 수비를 조직하며, 결정적인 순간 자신이 직접 골을 터뜨렸다. 무엇보다 그를 전설로 만든 것은 프리킥이었다. 그의 오른발에서 나오는 프리킥은 마법 그 자체였다. 페널티 박스 밖 어디에서든 골을 넣을 수 있었고, 통산 77개의 프리킥 골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 물론 리옹의 7연패는 주닝요 혼자만의 성과는 아니었다. 카림 벤제마, 플로랑 말루다, 그레고리 쿠페 등 뛰어난 동료들이 함께했지만, 주닝요는 그들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었다. 그는 리그앙 최고의 왕조를 완성한 아이콘이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또 다른 레전드 5인

리그앙의 역사는 파팽, 주닝요, 즐라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각 시대마다 리그를 빛낸 걸출한 선수들이 존재했고, 그들 역시 프랑스 축구의 DNA를 형성했다. 첫 번째는 조지 웨아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 AS 모나코에서 뛰며 아프리카 선수 최초로 발롱도르를 수상했고, 이후 PSG에서도 활약하며 리그앙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두 번째는 디디에 드로그바다. 올랭피크 마르세유에서 2003-04시즌 단 한 시즌 뛰었지만 20골을 터뜨리며 첼시 이적의 발판을 마련했고, 마르세유 팬들에게는 여전히 전설로 남아 있다. 세 번째는 에덴 아자르다. 릴 OSC에서 2010-12시즌 리그 우승을 이끌며 최우수 선수상을 연속 수상했고, 현대 리그앙이 배출한 최고의 드리블러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네 번째는 티아고 실바다. PSG의 황금기를 즐라탄과 함께 이끈 수비의 리더로, 8시즌 동안 7차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최고의 센터백 중 한 명임을 증명했다. 다섯 번째는 소니 앙데르송이다. 올랭피크 리옹의 7연패 시대 골키퍼로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고, 2006-07시즌 21경기 무실점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리그앙 역대 득점왕: 최고 골잡이들의 계보

리그앙의 역사는 위대한 골잡이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화려한 플레이와 전술적 변화 속에서도 궁극적으로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들이 리그의 주인공이었다. 리그앙이 1932년 창설된 이래, 수많은 공격수들이 득점왕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역대 최다 득점자의 자리는 수십 년간 변하지 않고 있다. 1위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델리오 온니스로, 1971년부터 1986년까지 15시즌 동안 299골을 기록했다. 그는 주로 AS 모나코와 투르에서 활약하며 꾸준한 득점력을 과시했고, 특히 1972-73시즌부터 1974-75시즌까지 3시즌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다. 2위는 프랑스의 베르나르 라콩브로, 1969년부터 1987년까지 18시즌 동안 255골을 터뜨렸다. 그는 올랭피크 리옹의 전설로, 리옹에서만 222골을 기록하며 클럽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남았다. 3위는 에르베 르벨리(216골), 4위는 로제 쿠르투아(210골), 5위는 타데 시소프스키(206골)가 차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상위권 기록이 모두 1980년대 이전에 수립되었다는 사실이다. 현대 축구에서는 선수들의 이적이 잦고 커리어가 짧아지면서, 한 리그에서 오래 뛰며 압도적인 득점을 쌓는 일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음바페조차 191골로 7위에 머물렀고, 이는 과거 골잡이들의 위대함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깨지지 않는 기록, 델리오 온니스의 299골

델리오 온니스는 리그앙 역사상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다. 1971년부터 1986년까지 15시즌 동안 총 299골을 터뜨렸으며,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그는 주로 AS 모나코와 스타드 랭스에서 활약했고, 5회에 걸쳐 리그앙 득점왕에 올랐다. 특히 1971-72시즌 모나코에서 데뷔한 첫해에만 44골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득점력을 입증했다. 온니스의 기록이 깨지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현대 축구에서는 선수들이 한 리그에 오래 머물지 않으며, 유럽 빅클럽으로의 조기 이적이 일반화되었다. 음바페조차 7시즌 만에 레알 마드리드로 떠났고, 191골에 그쳤다. 또한 경기 수 자체도 과거보다 줄어들었다. 온니스는 14시즌 동안 474경기를 소화했지만, 현대 선수들은 부상 관리와 로테이션으로 인해 그만큼 출전하기 어렵다. 델리오 온니스의 299골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한 시대를 지배한 골잡이의 집념과 지속성을 상징하는 기록이다.

최근 10년간 리그앙 득점왕 트렌드 심층 분석

최근 10년간 리그앙 득점왕의 계보는 PSG의 지배력을 그대로 반영한다. 2014-15시즌부터 살펴보면, 알렉상드르 라카제트(리옹, 27골),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PSG, 38골과 50골), 에딘손 카바니(PSG, 35골)가 득점왕을 차지했고, 2018-19시즌부터는 킬리안 음바페가 6시즌 연속 득점왕을 독식했다. 흥미로운 점은 2014-15시즌 라카제트를 제외하면, 모든 득점왕이 PSG 소속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PSG의 압도적인 전력과 공격 자원 집중이 개인 기록에도 직결되었음을 보여준다. 득점왕 달성을 위한 평균 골 수도 시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2000년대 초반에는 20골 안팎으로도 득점왕이 가능했지만, 최근 10년간은 최소 27골 이상이 필요했다. 특히 즐라탄의 2015-16시즌 38골, 음바페의 2021-22시즌 28골처럼, PSG 선수들은 타 팀 공격수들보다 더 많은 득점 기회를 누렸다. 음바페 이적 후 2025-26시즌은 이러한 트렌드에 변화가 올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득점왕 경쟁이 다시 열린 구도로 전환될지 주목된다.